정치
우크라이나에 칼 빼든 한국, 공관원 절반 철수

정부가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한 우크라이나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현지 한국대사관 공관원 일부를 철수하기로 했다. 이달 초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데 이어 추가로 강경한 외교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양국이 포로 송환 문제를 둘러싸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외교 갈등이 한층 깊어지는 모습이다.
박두순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대사 소환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측이 우리 정부가 요구한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공습 위협이 이어져 현지 공관원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 일부 인력을 철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관원 철수는 단순히 현지 안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만은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우크라이나 측에 우리 입장을 전달했지만, 요구한 수준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외교적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공관 인력을 줄이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철수 대상은 전체 공관원 가운데 절반가량이며, 윤지완 주우크라이나 대사대리는 현지에 남아 대사관 업무를 총괄할 예정이다.
공관원 일부가 철수하더라도 양국 간 외교 소통은 계속된다. 외교부는 대사대리를 중심으로 필요한 협의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영사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모두 현지에 남는다.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업무가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필수 인력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외교적 항의의 수단으로 공관원을 철수하는 것은 이례적인 조치다. 과거에도 현지 정세가 악화하면서 해외 공관 인력을 철수한 사례는 있었다. 2015년 리비아와 2021년 아프가니스탄 주재 한국대사관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번 결정은 현지의 안전 위험뿐 아니라 상대국이 우리 정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항의라는 점에서 이전 사례들과 차이가 있다.

이번 갈등은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이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으로 송환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한국 정부는 해당 사안이 비공개로 다뤄지기로 한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측에 공식적인 설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포로와 그 가족의 안전을 고려해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양국 사이에 비공개 합의가 있었는지를 놓고 한국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고,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이번 논란을 이미 종결된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한국 정부가 요구한 수준의 사과와 후속 조치가 나오지 않으면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달 초 박기창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우크라이나 측의 대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양측이 요구 조건을 둘러싼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이번에는 공관원 일부 철수라는 조치를 추가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한 뒤,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한 논의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번 조치가 우크라이나의 입장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크라이나 측이 이미 해당 사안을 종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사과가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외교적 압박이 계속될 경우 양국 간 소통과 협력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현지에 남아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 문제도 과제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에는 약 85명의 재외국민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관원 일부가 철수하면 영사 업무와 국민 보호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외교부는 영사 인력을 전원 잔류시키고 필수 업무를 유지해 재외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북한군 포로 송환 사실의 공개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 차이가 외교관 소환에 이어 공관원 철수로까지 이어진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압박 수위를 높인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추가적인 설명이나 사과 등 후속 조치를 내놓을지, 양국이 외교적 협의를 통해 갈등을 풀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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